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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및 추천

핑거스미스(Fingersmith) [장르소설, 4.5/5점] -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 비교분석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포인트

Fingersmith
('도둑'을 뜻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

 

한 줄 소감: 밤을 새서 읽게 하는 박진감, 끝이 없는 반전들
(a.k.a.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류의 소설)
  • 줄거리 요약: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수 트린더와 모드 릴리라는 두 소녀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수는 사기꾼들에게 양육되어 자라난 소녀로, 그녀의 삶은 품위 있는 여성인 모드를 속여 결혼하여 그녀의 재산을 획득하는 계획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뒤바뀐 운명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두 주인공을 깊이 연루시킨다.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과 은밀한 관계, 복잡한 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이 소설을 통해 교묘하게 풀어간다.
  • 개인적 평점: 4.5 / 5점
    • 일단, 너무 재미있다! 사라 워터스라는 작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개 방식이 엄청 매력적이고 특히 중간에 수의 시점에서 보여주던 1부가 끝나면서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아 곧장 500장이 넘는 후반부를 읽어치울 수 밖에 없었다. 
    •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또한 매력 포인트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속 활발하게 살아가는 도둑들, 그리고 퀴퀴한 대저택 속 음침하게 살아가는 귀족들의 모습이 대조된다. 그런데 그 두 계급 사이에 출생의 비밀까지 섞여버린다면?
    • 정신병원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당시 영국의 정신병원은 정말 병패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성 억압의 도구로 많이 사용된 듯하다. 굉장히 많은 영국 여성 문학 속 이 '정신병원'의 끔찍함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샬럿 퍼킨스 길만(Charlotte Perkins Gilman)의 'The Yellow Wallpaper'가 있다. 한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 소설을 읽다가 묘한 기시감에 찾아봤더니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었다! 어쩐지 어디서 본 내용이다 싶었다. 당장 비교분석해보면서 읽었다. 다음은 내가 찾은 몇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아가씨의 원작, 핑거스미스(사진은 영국 드라마의 포스터)

  • 영화 '아가씨'와의 비교분석
공통점

 

1) 전체적인 줄거리와 구성, 분위기, 관계성, 캐릭터성

 

등장인물의 관계성이 거의 똑같고 재산을 빼돌리려는 계획, 그 안에 수반되는 사건들이 거의 다 비슷하다.

특히 삼촌의 이상한 책 수집욕과 성적 도착증은 그대로이다. 이를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대입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더 기괴한 느낌이 났다.

특유의 음울하고 괴상하지만 어쩐지 매혹적인 분위기는 비슷하게 구현된 것 같다.

물론 영화니까 '아가씨'가 더 미학적인 분위기가 나긴 한다.

 

캐릭터도 완벽하게 구현된 것 같다. 특히, 아가씨 역할인 '모드'를 소개할 때 '통통한 입술'을 항상 강조하는데 배우 김민희님의 입술이 아주 비슷하다. 또한, 책에서는 하녀 역할인 '수'를 묘사하면서 '수키'라는 캐릭터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그 '수키'라는 이름과 아주 비슷하게 영화에서 '숙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다.

 

또한, 1부와 2부가 나뉘어져 하나는 숙희의 시점에서, 하나는 아가씨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것도 동일하다. 이로 인해 1부가 끝나면 독자/청중들은 뒷통수를 치는 반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구성을 동일하게 연출했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차이점

 

1) 시대배경적 환경

 

확연한 차이점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하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다른 하나는 한국 일제강점기 시대.

아주 매력적이며 예측 가능한 각색 포인트이다.

 

2) 일본어, 한국어라는 다른 언어 사용

 

영화 내에서는 시대적 환경 때문에 일본어와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그리고 숙희와 있을 때, 아가씨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싶어한다.

소설 속에서는 영어라는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지만, 수는 글씨를 읽지 못한다. 이 점 때문에 수는 답답한 상황에 많이 처하기도 한다.

 

3) 아가씨와 하녀의 나이 차이

 

사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의도한 부분인지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비주얼상 영화에서는 아가씨와 하녀의 나이 차이가 좀 있어보인다. 소설 속에서는 수와 모드의 나이가 동일하다. 이 점을 이용한 또 한가지 반전이 일어난다.

 

4) 제목

 

소설의 제목은 '핑거스미스', 즉 '수'의 직업이다. 이는 '수'가 자라온 환경을 나타내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반면, 영화의 제목은 '아가씨'이다. 더 매혹적으로 보이는 이야기이며, '아가씨'와 '하녀'의 관계성에 좀 더 초첨을 맞추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볼 수 있다.

 

5) 후반부 내용에서는 확연한 차이점 [스포일러 주의]

 

자, 이제 중요한 차이점이 등장한다.

1부가 끝나고, 수/숙희가 대신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충격적인 반전이 발생하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수'가 이를 알지 못한다.

수와 모드는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모드'가 수에게 진실을 말하려던 순간 '수'는 화제를 돌려버려서 '모드'는 그녀에게 다 털어놓지 못한다. 따라서 '수'는 모드를 증오하며 자신을 키워준 '석스비 부인'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 생각하며 정신병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탈출하게 된다. 탈출해서 런던의 집까지 가게 되지만, 그 곳에서 모드를 발견하고 자신의 자리를 뺏은 것이라 오해해 그녀를 죽이려 한다.

 

또한, 출생의 비밀은 무엇이냐. 바로 '석스비 부인'이 어린 시절 수와 모드를 바꿔치기 해서 18세까지 수를 지독한 (삼촌의) 환경에서 구해내는 계약을 그녀의 어머니와 맺은 다음, 재산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수를 계략에 참여시킨 것이었다. 결국 수와 모드는 인생이 송두리채 부정당하는 상황에 처하고 수는 '석스비 부인'이 살인으로 교수형을 당하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드를 찾아가게 된다.

 

(...) 어쨌거나 정말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 엄청나게 매력적인 작품들이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각 작품을 직접 읽어보거나 시청하길 추천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될 것이다. 강추!

 

 

저자 소개: 사라 워터스(Sarah Waters)

 

사라 워터스(Sarah Waters)는 영국의 소설가로, 1966년 7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역사와 문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리버풀에서 창작 쓰기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라 워터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작품은 주로 여성 캐릭터와 그들의 감정, 관계,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복잡한 플롯과 높은 문학적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Tipping the Velvet" (1998), "Affinity" (1999), "Fingersmith" (2002), "The Night Watch" (2006), "The Little Stranger" (2009)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Fingersmith"는 특히 호평을 받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사라 워터스는 성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로도 유명하며, 그의 소설들은 문학적 성취와 사회적 관심을 동시에 모두 담고 있다.